[시론] 용산 미군기지 이전의 마무리 과제
한국 대통령 집무실의 위치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를 밝히려는 건 아니다. 의견 표명 자체가 부적절할 수도 있지만 최근 상당수의 한국 언론과 외신이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이전에 주목했다. 주한미군의 평택 이전으로 남산에서 한강까지 이어지는 용산 미군기지 부지가 비어 있으며 이곳이 용산공원으로 조성된다는 점에 집중한 기사들이 쏟아졌다. 용산 미군기지 이전사업은 장기간 진행됐기 때문에 역사적 경과를 살펴보는 게 도움이 될 것이다. 노무현·조지 W. 부시 정부 시절이던 2004년, 한·미 양국은 ‘용산기지 이전협정 이행합의서’에 서명했다. 2008년까지 서울에 있는 주한미군 대부분을 평택미군기지(캠프 험프리)로 이전하고 용산기지 시설과 구역 대부분을 한국 정부에 반환하는데 합의했다. 하지만 대규모 건설 및 이전에 드는 비용과 복잡한 과정을 미루어볼 때 4년 이상 걸릴 것이라는 게 금세 확연해졌다. 내가 신임 주한 미국대사로 서울에 부임했던 2008년 9월, 상징적인 도심 녹지공간으로 계획된 용산공원을 포함해 용산의 미래에 대한 구상이 이미 세간의 화젯거리였다. 용산기지 이전은 진행이 더뎠지만, 이미 한국의 다른 지역에서는 이전 움직임이 있었다. 수십 년 동안 거의 변화 없이 외딴 초소에 있는 몇 채 안 되는 퀀셋 막사들로 구성된 다양한 크기의 미군 시설들이 폐쇄되었고 해당 부지는 지역 사회에 반환되었다. 점차 주한미군 주둔은 현대 한국과 현대적 한·미 동맹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그 기능과 위치가 통합되었다. 내가 주한 미국대사로 재직하며 보낸 최고의 날들 중 하나도 2011년 그 당시 국무총리, 부산시장과 함께 캠프 ‘하야리아’를 부산시민공원으로 전환하는 기공식에 참석한 날이다. 땅이 부족한 부산에서 이 공간은 시민들에게 꼭 필요한 녹색 휴식처가 되었다. 각각의 미군기지 반환은 규모에 상관없이 수많은 이해관계자, 정부 부처 및 관련 단체들, 지자체 등의 참여를 바탕으로 전통적 방식의 군사·외교적 협상을 훨씬 뛰어넘는 복잡한 토론을 거쳐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었다. 환경 복원은 오염 기준과 비용 부담 주체에 따라 여전히 가장 민감한 현안 중 하나다. 역사적인 각주 한 가지를 더 소개한다. 나는 1980년대 제임스 릴리 주한 미국대사 부임시절 미대사관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했다. 릴리 대사는 서울에서의 다사다난한 재임 기간(1987~1989)을 기술한 회고록에서 용산 미군기지 이전의 첫걸음이자 어쩌면 잊힌 단계에 대해 소개했다. 릴리 대사는 1988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취임 직후 용산기지 내 주요 시설을 이전하는 데 본인에게 협조를 구했다고 언급했다. 서울올림픽이 다가오면서 특히 소련이나 중국은 물론 한국과 아직 국교 수립 전인 국가에서 찾아올 외국 방문객들이 한강을 건너면서 미군기지와 미군 전용 골프장을 직접 볼 수 있다는 데 한국 정부의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그는 노 대통령의 제안이 ‘너무 야심차다’라고 생각했지만 한국인들이 미군 전용 골프장을 특히 ‘불쾌하게’ 여기고 있다는 점에는 동의했다. 그래서 골프장을 서울 외곽으로 이전하는데 동의하도록 미군 지휘관들을 압박했다. 이후 용산기지 내 미군 골프장 부지는 한국에 반환돼 용산가족공원으로 조성되었다. 릴리 대사는 미군 골프장 이전에 대해 “싹트는 민주주의, 성공적인 올림픽 개최국, 자주독립국가라는 1988년 대한민국의 변화된 현실을 반영한 결정”이라고 서술했다. 한 세대가 지난 지금도 용산의 변신은 계속되고 있다. 한국인들이 용산의 미래를 만들어 가겠지만 미국은 그 과업을 완성하기 위해 협력해야 할 동맹이자 친구로서의 역할과 책임이 있다. 인내심은 물론 우선순위 선정, 정치적 의지와 기량, 타협 정신이 모든 면에서 필요하다. 캐슬린 스티븐스 /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시론 미군기지 마무리 용산 미군기지 용산기지 시설 용산기지 이전협정